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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 2014-12-25 16:32:03, 작성자: 겨레하나, 조회수: 7301

중국 연길시 방문기, 의원연수를 다녀와서

백성원 관악구의원

첫째 날 : 연길로 가는 길 (8월 27일 수요일)
아침 8시 비행기.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새벽 4시 50분까지 의회에 집결하여 5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처음으로 가는 중국·두만강지역국제투자무역박람회에 참석하는 것이지만 연길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연길은 원래 고대부터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고 1860년대부터 조선의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며 살아온 곳이다.

연길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다. 그래서 실제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이지만 시간상으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한국에서 8시 출발해서 연길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

낯설 것만 같았던 연길시의 모습은 오히려 익숙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광고물과 간판, 표지판 등에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한글이 병기된 것이 매우 궁금해 현지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연길 조선족 자치구에서는 한글과 한자 병기가 조례로 정해져 있다고 하였다.

백산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전통시장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농산물과 과일, 공산품, 고기, 버섯, 간식거리, 그리고 사람들.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비슷한 듯 다른 맛뿐이었다.

저녁이 되어 환영 만찬에 참여하여 전통 중국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다양한 음식이 매우 먹기 좋게 차려져 있었다. 처음 먹는 중국 본토 음식. 강한 향과 매운 맛은 한국에서 먹던 중국음식과 매우 달랐다. 중국 술 또한 매우 독해 목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연길에서는 건배할 경우 무조건 ‘원샷’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래 살려면 한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찬 후 공연장으로 이동하였다. 세종문화회관과 비슷한 규모, 아니 더 커 보이는 공연장의 한국어 표기는 ‘환락궁’이었다. ‘환락궁’이라는 표기에 다들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공연장에 입장하였다. 연길의 춤과 노래는 북한의 춤과 노래와 비슷하였다. 작년에는 북한의 피바다 공연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북한 공연이 빠져있었다. 북한의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었다.

둘째 날 :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8월 28일 목요일)


아침 6시 기상, 간단히 조식을 마치고 8시에 시작하는 국제무역박람회 개막식 참석을 위해 서둘러 준비하고 버스를 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제무역컨벤션센터 광장에서 개막식 행사가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어제 저녁 ‘환락궁’에서 본 공연과 비슷한 공연이 1시간 동안 있은 다음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개막식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개막 행사 후 본격적인 상품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국제무역컨벤션센터 내 1층에서 3층, 그리고 센터 앞 광장 주변까지 다양한 전시 부스가 마련되어 각종 상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1층부터 살펴보니 중국의 전통 술과 피혁물품, 농산물 등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 물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제품들도 볼 수 있었다. 상품 전시, 판매뿐만 아니라 투자무역상담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자나 무역에 대해 문외한 이지만 이곳에서 전시, 판매, 상담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매우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올해가 10번째 박람회라고 해서 왠지 느슨하고 진지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 전시장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와 중식을 먹은 후 오후 일정에 들어갔다. 중한 벤처 포럼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현지 사정상 참여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연길시 상점들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연길시 중심지역에 있는 관공서, 백화점, 전자상가, 소규모 점포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둘러보기 위해 숙소에서부터 걸었다. 날씨가 매우 더웠으나 연연하지 않았다. 1970년대 말 또는 1980년대 초 우리나라 같은 모습의 연길시. 말도 통하지 않는 곳.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셋째 날 : 두만강 그리고 북한 (8월 29일 금요일)


3일차 조식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중국과 북한 국경이 맞다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중국도문변경(中國到門邊境)’이라는 표지가 있는 곳이다. 마주하고 있는 북한은 '남양시'라는 마을이다. 두만강이 흐르고 있는데 다리 하나가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고 있었다. 다리 중간이 국경이었다. 다리 너머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 김일성 뱃지를 단 북한사람이 다리를 건너오는 것도 보았다.

우리나라 땅인데 넘어가려 하자 중국군인이 제지하며 넘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땅을 우리가 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휴전선을 없애고 북한에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 곳 매점에서는 북한 돈과 북한담배 등 북한 물건도 판매하고 있었다. 기념이 될 만한 것 같아 북한 돈과 담배를 사서 한국에 가져왔는데 왜 샀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도문을 떠나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용정중학교(舊 대성중학교)에 들렀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龍井第一中學校)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조선족 학생들이 이곳 신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구관 앞에는 윤동주 시비(詩碑) -서시-가 세워져있으며, 건물 2층에는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항일운동이 활발하였던 이 곳, 항일운동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기념전시관에서 ‘서시’ 시집을 한 권 샀다.

숙소에 돌아와 중식을 먹고 오후에 연길박물관, 연길시청을 둘러보았다. 연길 박물관은 우리나라 박물관과 비슷하였다. 전체 3층 건물인데 3층에서부터 구석기 시대 유물을 전시하여 2층, 1층으로 내려오면서 역사가 진행되었다. 한국말로 해설을 하는 안내원을 따라 다녔다. 긴 해설이 이어지면서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해서 걷고 또 걸으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1층은 구경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2층까지만 설명을 들은 후 박물관에서 나오게 되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연길시청으로 향했다. 이 곳의 관공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나름 시청구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시청 앞에 도착하니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이 매우 권위적인 모습이었으며 위엄 있어 보였다. 그런데 버스가 시청 앞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돌아 나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청 안으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니 허무하였다. 기대가 컸었는지 허탈함도 컸다.

저녁에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북한 식당에서 만찬을 가졌다. 실제 북한 사람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식후엔 직접 북한 공연까지 하는 식당이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남남북녀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아름다운 북한 아가씨들이 우리를 환영하였다. 중국에 와서 처음 먹는 김치와 한국 음식. 그동안 느끼하고 기름진 속이 다 내려가는 시원함이 있었다. 맛있는 식사 후엔 음식을 나르던 아가씨들이 공연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북한 노래와 춤, 다양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모두들 놀람과 즐거움 가득한 표정으로 행복한 저녁시간을 갖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는 백두산 방문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넷째 날 : 백두산 (8월 30일 토요일)


새벽 4시, 연길로 출발하던 날과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4시 30분 백두산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 4~5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꽤 먼 길이었다. 새벽 4시인데 길거리는 벌써 동이 터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연길의 관광버스는 겉은 멀쩡하게 생겼다. 겉모습과 달리 승차감은 너무 안좋아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마치 말을 탄 듯 계속 덜컹거렸다. 3시간 정도 달린 후 백두산 아래 이도백하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였다. 가는 동안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며 기상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식사 후 1시간정도 가니 백두산 아래 매표소가 나왔다. 다행이 입구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있었다. 이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중간 입구까지 이동. 다시 12인승 승합차로 갈아타고 엄청난 속도로 천지아래까지 올라간다. 천지 아래 도착시간은 11시! 새벽 4시 50분에 출발해서 11시!! 6시간이 더 걸렸다.

이제 천지가 눈앞에 있었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천지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백두산 정상에 올라서니 그 아래로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산이 있었나 싶었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았다고 하였는데,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우리 일행이 내려오고 나서 바로 구름이 내려와 천지를 덮어 버린 것이었다. 정말 순간의 차이였다.

천지뿐만이 아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백두산 자락은 광야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장관이었다.

연길에 있을 때는 더운 여름 날씨였는데 백두산 천지(해발 2,700m)는 초겨울 날씨처럼 추웠다. 바람막이 옷으로는 부족하였다. 다음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두꺼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천지를 보고 내려와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른 광경을 목격하였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차 안. 끝없이 펼쳐지는 만주(滿洲) 벌판, 이천년 전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누볐던 땅. 차창을 통해서 바라본 것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었다. 중국 연길 시내에서 북한과 맞닿은 두만강까지는 3300만㎡ 규모의 옥수수농장이 펼쳐져 있다고 하니 얼마나 넓은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백 성 원 구의원(다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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