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07월 16일 화요일 ] 겨레하나예술단     겨레평생교육원     겨레몰
   
< 겨레칼럼 >
복날의 도식(道食)
복날의 도식(道食) 강증산(姜 ...
< 관악뉴스 >
사)미래환경연합 (회장 ...
사)미래환경연합 (회장 김창용) 7월 월례회의 사)미래환경연합 (회장 김 ...

등록일시: 2014-12-21 09:59:40, 작성자: 박종우, 조회수: 10662

석포(碩浦) 김학균(金學均) 선생님

실향(失鄕) 과 이산(離散)의 아픔을 치유(治癒)하는 문-무 (文-武)의 긴 여로(旅路)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 실향민 (失鄕民) 석포(碩浦) 김학균(金學均) 선생님

난(蘭) 잎을 1획(畵) 2획 치시며...
“1엽(葉) 2엽 3엽...여기 둥그런 모양이 생겼죠...이걸 봉안(鳳眼)이라고 해요. 봉황(鳳凰)새 눈을 닮았다고 해서...”

선생님이 재능기부로 무료 자원 봉사하고 있는 사군자 (四君子) 교실 수업 풍경이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梅蘭菊竹)를 일컫는 사군자는 그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고 하여 동양화나 문인화(文人畵)[직업적 화가가 아닌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 의 대표적 소재가 된다. 기자는 이 사군자 교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사군자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동서 냉전의 마수(魔手)에 걸린 한국 전쟁 (1950-1953년)의 비극적 상처는 무려 61년 이라는 통분(痛憤)의 세월이 흘렀어도 아물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구촌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분단국가(分斷國家)라는 치욕(恥辱)적인 오명(汚名)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악구청의 지원을 받아 희망사업단에서 2013 년에 펴낸 <어르신 자서전>의 주인공 아홉 분 중에 북한 출신이 두 분 계신데, 그중 한 분이 김 학균 [金學均 / 號 =석포(碩浦), 운샘] 선생님이시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으로 명예군수까지 지내신 실향민이신 선생님을 모시고 당신의 자서전 <석포 김학균의 길>과 인터뷰를 통해, 실향(失鄕)과 이산(離散) 의 상흔(傷痕)을, 문-무 (文-武)연마와 심신단련으로 치유(治癒)해 오신 75 성상(星霜)을 되돌아본다.

기자 = 선생님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 사군자 교실에서 공부할 때 자상하시고 섬세하신 가르침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모처럼 고향생각도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배워볼까 합니다. 선천군 운종면 명예 면장과 군수직을 역임하셨고 요즈음은 평안북도 선천군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碩浦 선생님 =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그리고 아직 수복(收復)이 안 된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를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이 물경 8 백만에 달합니다. 어언 70년 동안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있다 보니 정신적, 문화적인 면에서 남북한의 차이가 엄청나지요. 통일에 대비하여 이러한 차이를 좁혀보자는 취지로 우리 도민회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여 왔습지요.

기자 = 선생님께서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이미 되어 있겠군요

碩浦 선생님 = 신청 했다가 취소했어요. 만나고 난 뒤 북한의 가족한테 올지도 모를 불이익이나 피해가 걱정이 되더군요. 게다가 헤어진 후 아픔이 더할 것 같아 차라리 그리워하며 애태우다가 통일되면 얼싸안고 재회하는 것이 더 좋을 거 같더라구요.

기자 = 선생님...먼저 그리운 고향 얘기부터 좀 해주시죠.

碩浦 선생님 = 내 고향은 평안북도 선천군 운종면 신미도라는 섬인데 겨울에 썰물 때는 뻘이 얼게 되면 걸어서 육지로 나갈 수 있었지요...
우리 마을에서 상당한 부농(富農) 집안이라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보낸 것 같아요. 그러나 부모님 가정교육이 아주 엄하셨어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식사 예절을 강조하셨어요.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집에 빨리 들어오고, 어르신들이 먼저 드신 후 먹어야 하고, 음식을 타박하지 말고, 뒤적이지 않으며, 소리 내어 씹지 않아야 하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하지 말고, 밥 먹고 바로 들어 눕지 말고, 이삼백 보는 걸어라...그리고 워낙 추운 지방이라 방을 들락날락 하지 말라 ...그런 것들이지요. 어쩔 수 없어 밥을 밖에서 먹게 되는 경우에도 잠은 꼭 집에서 자야한다...

기자 = 먹는 것은 아무데서나 먹더라도 잠자리는 반드시 가려서 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碩浦 선생님 = 아...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54 년 가을이던가...그러다보니 어언 60 년 전 이네요 세월이 유수라더니......내 나이 열 다섯 살 때 였어요. 삼선교에서 김장배추를 내려 놓으니 새벽 4 시쯤 됐을라나...그러니 그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가 안쓰러워 그 근방에 있던 호떡 굽는 구루마 [짐수레. 달구지] 에서 잠시잠깐 눈을 붙이고 집에 들어 갔더니 형님께서 우리 집안 교육을 모르느냐...밥 묵는건 아무데서나 묵더라도 잠은 꼭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자야지 ...그러셨어요.

기자 =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 주시는군요...선생님 형제자매 분들은...

碩浦 선생님 = 저는 7 남매 중 여섯째지요.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가 21년 이나 돼요. 요즘 같으면 좀 황당한 느낌일 테지만 그 때 당시는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기자 = 선생님께서는 열두 살 그 어린 시절에 피란길에 오르시고... 그 동안 온갖 고초를 다 이겨내시며 올곧게 튼실하게 살아오셨는데 그런 역경을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어떤...그러니까...신앙생활은 어떠세요 ?

碩浦 선생님 = 우리 가족은 모두 카톨릭 신자였어요...그래서 저는 ‘모태신앙인(母胎信仰人)’으로 태어난 거지요. 어렸을 때부터 주일이면 성당에 나가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성당에서 연극도 하고 선물로 엿이나 과자를 나누어 주던 기억이 생생해요. 해방이 되자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38선을 경계로 반으로 뚝 잘라서 소련이 북한을, 미국은 남한을 신탁통치하게 되었잖아요..그러자 남한은 민주주의,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게 되고, 미국은 이승만을, 소련은 김일성을 정치적 지도자로 내세웠지요.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 땅에 종교탄압이 시작되었는데, 종교를 없애기 위해 학생들을 일요일에도 나오도록 해서 도토리를 따거나 무슨 무슨 일들을 시키며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지요. 부농(富農)으로 살던 우리는 지주계급으로 분류되었고 나이 드신 형님들은 공산당에 가입 하지 않아 공산치하가 된 신미도에서 우리 가족의 삶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지요. 그 동안 부를 누렸던 지주들은 모두 노동자, 농민을 수탈한 반동분자로 몰아세우고 ...

기자 = 정말 어느 날 하루아침에 종교의 자유가 박탈되고,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던 가정의 터전이 흔들리게 되었군요. 얄궂은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고통...

碩浦 선생님 = 선친(先親)께서 땅을 많이 가진 지주라는 신분 때문에 총살 대상자가 되었지요. 그래서 선친을 모시고 큰형님, 삼촌과 사촌 형이 집에 있던 범선( 帆船= 큰 돛단배 )을 타고 피란을 가기로 했습지요. 대청도 앞바다 쯤 에서 호주 폭격기의 폭격을 받았으나 선친과 형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으셨대요. 형은 부상을 당했다고 해요. 두 분은 인천 부두에서 부두 노동을 하시면서 고향에 돌아올 날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오로지 가족 생각에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시던 선친께서는 영양실조로 그만 돌아가셨어요.

기자 = 참 안타깝습니다...그런데 선생님...호주 폭격기는 우리 편일 텐데 왜 선생님 가족들이 탄 배를 공격했을까요?

碩浦 선생님 = 북한을 탈출하여 피란길에 나선 민간인인 줄 모르고 그저 북한 공산군이라고만 생각하고 폭격을 가했던 모양입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갑판으로 나와 입고 있던 흰 옷을 벗어 흔들며 우리는 민간인이라는 걸 알려주려 애썼지만 폭격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빙 한 바퀴를 돌아서 기총사격을 가했다나 봐요. 날벼락이죠.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 들었고...

자서전 요약 = 우리 고향 신미도는 중공군과 유격백마부대가 번차로 점령과 철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마침내 유격백마부대의 입성(入城)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피란길에 나선 우리 가족들은 황해도 남서쪽에 있는 옹진반도로 가서 대화도, 석도, 초도,
장산곶을 거치면서 갖은 천신만고(千辛萬苦)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백령도에 도착했다.

碩浦 선생님 = 혹시 “엘 에스 티 (LST)”라고 들어보셨나요?

기자 = 예...전쟁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장갑차(裝甲車)나 군인들을 싣고 와서 바닷가 육지에 내려놓는 큰 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碩浦 선생님 = 그래요. 맞아요. 상륙정(上陸艇)이라고 하지요. 피란길에 그걸 다 타 봤어요. 당시 유엔군이 우리나라에 그 배를 세대 가져왔다는데 그 중에 하나를 타고 백령도에서 출발하여 인천 앞바다를 지나 군산을 거쳐 목포까지 갔었지요. 그렇게 오는 도중에 배 안에서 이승을 떠나는 생명이 있는가 하면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지요...사망자가 생기면 시신(屍身)을 배 안에 그대로 둘 수가 없어 무거운 쇠 덩어리를 시신에 매달아 수장(水葬)해야만 하는 가족들의 오열(嗚咽)이 있는가 하면 저 만치서는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산모의 진통...

기자 = ...정말 필설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생과 사의 처절한 현장이군요...

碩浦 선생님 = 그런 와중에서도 어르신들끼리 주고 받으시던 넉넉한 정담(情談)들이 생각나는군요...피란 길에 배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고향이 어디라고 해얄까...어디긴 어디야. 바로 여기가 고향이지. 여기 황해바다 아구리선(船)이 고향이지...탱크와 많은 군인들을 싣고 다니는 “엘 에스 티”의 출입구가 엄청 커서 “아구리”라고 했던가 봐요...무엇을 집어삼켜 없애는 것을 “아구리”라고 했구요.

자서전 요약 = 목포에 도착한 우리 가족들은 친상(親喪)의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낯선 타향살이라는 또 하나의 생존을 위한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 이런 와중에 같이 피란 나온 사람들 중에는 시름시름 앓다 죽기도 하고 배를 타고 오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도 한다. 가족들은 힘겹게 목포에서 무안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다 3년 정도 지난 뒤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으나 고향에서의 유복한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무일푼의 바닥 생활을 겪게 된다.

碩浦 선생님 = 남한사람들은 북한에서 피란 내려온 이북출신들을 “지독하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피란과정에서 일가친척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내려온 사람이 많고 더구나 모든 재산을 북쪽에 두고 내려와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몸뚱이 하나 가지고 먹고 살아야 했으니 “지독”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기자 = 아마 생활력이 강하다는 표현일 테지요....선생님께서는 50여년을 무도인(武道人)의 길로 정진해 오셨는데 50년 긴 세월동안 국내외에서 활약이 많으셨던데요...

碩浦 선생님 = 전쟁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가고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큽니까.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비극이지요. 통일은 꼭 평화적으로 이루어 져야 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워야 해요. “체력(體力)은 국력(國力)” 이라 했듯이 국민 체력이 강해야 통일이 빨리 오리라 믿고 국민체력 향상에 힘써 왔으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묵묵히 무도인(武道人)의 길을 걸어온 것이지요... 옛날에는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라 대부분 학업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 형제들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나는 종로3가 관수동에 있는 화강 고등 공민 학교를 중학교 과정으로 졸업하고, 성북경찰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동대문 창신동에 있는 강문고등학교 (현 용문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어요. 그때 성북경찰서 연무장에서 무술을 수련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후 무도인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스물 일곱 살이 되던 1966년에 서대문구 수색동에 대한 합기도회 수색도장을 설립했지요.

자서전 요약 = 나는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제자들 양성에 전념하며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무도인’으로서 살아왔다. 내가 무도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내 적성에도 맞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몸이 튼튼해야 한다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우리의 전통무술인 합기도(合氣道)와 태권도(跆拳道)를 전수하기 위하여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민간 외교관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합기도 = 무술의 하나. 맨손 또는 단도· 검· 창· 몽둥이 따위를 쓰며, 관절 지르기와 급소 지르기를 특기로 하는 호신술 ]

기자 =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무도인의 길을 걸어 오시면서도 어쩌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서화(書畵)’ 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시고 서화 작품 수상 경력도 화려하신데...환난(患難)의 시절을 주경야독(晝耕夜讀) 하시며 문무(文武)를 함께 연마하여 오신 선생님의 신실(信實)하신 삶에 경의(敬意)를 올리고 싶군요.

碩浦 선생님 = 무예(武藝) 와 서화(書畵) 예술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도의 경지나 예술의 경지는 비슷한 거예요. 무도(武道) 예도(藝道)...둘 다 도(道)지요. 이 둘 모두 그저 좀 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수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바로 “생활과 같은 것”이지요.

기자 = 사모님께서 시조(時調) 명창(名唱)이시라고들 하시던데 요담에 시간 나시면 사모님 한번 모시면 좋겠군요.
碩浦 선생님 = 내자(內子) 얘기 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말씀을 하시니까...젊어서부터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며 바쁘게 살았지만 지금 노년에도 역시 바쁘게 살고 있답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는 집안의 반대로 미용사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시조창(時調唱) [시조에 곡(曲)을 얹어 부르는 노래]을 배우게 되었는데 내자가 “끼”가 있었는지 사범자격을 따고 시조창 명인(名人) 자격까지 따내더니 전국 시조 경창(競唱)대회에 나가 최고상도 따고 장원도 하고 막 그러더군요. 내자를 좀 더 일찍이 배려하고 보살펴 줬어야 하는데 내 할 일에만 몰두한 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요양보호사 일도 하고 있어요...

기자 = 두 분께서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표(師表)로 우러를 만 하십니 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인쇄소 업무와 체육관 운영에 문인화(文人畵) 전수를 하시면서 해외연수와 도민회(道民會) 활동도 열심히 해 오셨는데, 지금도 사진작가로, 지역신문 기자로, 사군자 교실 수업도 하시면서 노인 심리 상담 지도사 자격증 까지 취득하시다니...어떻게 이 많은,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다 해 낼 수 있으신지 ...

碩浦 선생님 =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르치는” 일 또한 “배움” 이지요. 예전에는 배움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본인만 뜻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지역사회에서 실시하는 알차고 좋은 교육을 무상으로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자서전 요약 = 주위 사람들은 나더러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 수 있었느냐고 궁금해 한다. 그러나 나는 나만 특별히 바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해 오면서도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였을 뿐이다. 하루하루 바쁜 일정에 열정을 갖고 뛰다 보면 내가 늙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老人)이라고 생각할 틈이 없다. 지역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고 나라가 강건해 진다면 기필코 평화적으로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단단한 바위를 꼭 힘으로만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태도 힘도 없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도 세월이 지나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의 경험에서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 통일이라는 단단한 바위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기자 = 남과 북이 “따뜻한 솜이불” 함께 덮고 편히 잘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와서 碩浦 선생님의 절절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
{경력 소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초대 작가 / 전(前) 평안북도 선천군 명예군수 /
평안북도 문화상 수상 (예술 부문) / 국제 서화 예술 명인증서 수수 /
국제 호신도(護身道) 협회 회장 / 대한민국 서예 문인화 원로(元老) 총연합회 초대작가 / 노인 심리 상담 지도사 / 석포 서화(書畵) 연구회 회장 / [ E-mail : khk020731@hanmail.net ]
-------------------------------------------------------
{ 끝 } 2014 - 12 - 21
취재 = <겨레 뉴스> 박 종우 기자 dreamagehope@naver.com
-------------------------------------------------------

본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 인천 꿈의 축구전용경 ...
∵ 서양화가 조남현의 현 ...
∵ '겨레의 노래 ...
∵ "내가 탈북자 첫 ...
∵ 실화 바탕 시 사부곡 ...
∵ 중국, 90일 거류 여행 ...
∵ 부여 구드래 일원 경관
∵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
∵ 인천 월미공원 전망대 ...
∵ 김정일 기쁨조 보천보 ...
∵ 목포사랑 범시민 청결 ...
∵ 인천∼중국 카페리 이용 ...
∵ 성실로 꿈을 일구는 탈 ...
∵ 한국자유총연맹목포시지회
∵ 한국자유총연맹목포시 ...
∵ 북, 우리 해병대 훈련 ...
∵ 버려라 훨훨
∵ 中 단둥, 김정일 위원 ...
∵ 류우익 통일부 장관 [ ...
∵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
∵ 첫 시집 신브레인스토 ...
∵ “봉사 활동은 마음이 ...
∵ 2010년 경인일보 신춘 ...
∵ 중국내 탈북자 구출 & ...
∵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 ...
∵ 새조위 <신미녀 ...
∵ "한반도, 더는 ...
∵ "北 감시자·피감 ...
∵ 나는 오늘도 발로 식사 ...
∵ 김태형 사회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