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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 2011-04-11 20:40:13, 작성자: 겨레하나, 조회수: 11676

김태형 사회심리학자

"의심도 분노도 없는 자는 세상과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서울=겨레뉴스) 박선호 기자

<<사회가 1차원적으로 변할수록 ‘왜’ 는 사라지고 ‘어떻게’ 라는 질문만 남는다고 했다.‘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라는 질문만 만연해 진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인간들은 의심할 수 있는 원천적 힘을 상실했다. 의심이 거세된 인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불안증폭사회》 의 저자 심리학자 김태형을 만나봤다.>>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철학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어느 날 교수님이 강의를 듣던 학생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지셨어요. “공장 작업장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가?” 라고 물어보셨는데, 다들 “설치해야 한다” 고 얘기하더라고요. 기업은 최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감시해서 속된 말로 ‘빡세게’ 작업 능률을 올려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뒤에 이어진 말이었는데, 자기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감시 받았던 경험은 대단히 불쾌함으로 남아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교수님이 “왜 감시 받는 게 기분 나쁘니?” 라고 물었을 때 다들 교수님이 물어본 그 ‘왜’ 에 대해서 대답을 못했어요. 그게 좀 충격으로 남아 있어요. 이 세대들은 다들 의심하는 능력이 거세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들고요.


“의심을 할 수 없는 사고구조를 갖게끔 하잖아요, 지금 시스템이. 우리 때와는 또 달라요. 예를 들어서, 제가 어릴 때 처음 TV광고가 나왔거든요. 되게 어색하더라고요. 배우들이 나와서 이 냉장고 정말 좋다고 하는데, 그 배우에 대해 불신이 생기더군요. 아무리 봐도 그 냉장고를 그 배우가 써 본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저 놈 저거 써 보고 저러나. 거짓말 하고 있네. 써 보지도 않고 좋다고 하네” 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도 있었죠. 근데 지금은 그런 게 되게 익숙하잖아요. ‘돈만 주면 자기 신념과 상관없이 어떤 것이라도 말해 줄 수 있다. 그게 당연하다’ 는 의식이 만연하니, 당연히 의심할 수 없는 시대 아니겠어요. 돈을 받으면 거짓말을 해 줄 수 있고. 물론 본인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사회의 지배층은 주류 이데올로기를 교육기관, 인터넷공간 등을 통해 유포시켜요. 그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죠. 특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많이 잠식돼 있어요. 의심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광고를 보며 ‘상품이 좋다고 말하는 저 사람의 마음이 진짜인가’ 라는 생각을할수없죠.”

의심할 수 있는 여건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세상

▶지금 그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심을 하면 바보가 되거든요.

“의심할 수 있는 여건이 원천적으로 봉쇄돼있죠. 사람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 눈이 가기 마련이거든요. 지금 자기가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뭐가 이렇게 나와 세상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우리’ 의 문제엔 관심을 가질 수가 없죠. ‘나’ 의 문제에만 천착하고 있으니까요.”

▶파편화돼 있는 세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도 하고요.

“옛날에는 공동체가 살아있었죠. ‘우리’ 라는 의식이 강했고. 사고의 중심이 최소한 ‘우리’ 에서부터 시작했거든요. 당연히, 내가 왜 지금 힘든가가 아닌 왜 우리는 힘든가를 생각했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사고 단위가 철저하게 개인으로 분절돼있죠. 그럼 사회적 문제를 잘 못 보게 되요. 사회문제를 보려면 사람(혹은 우리)과 세계의 관계를 봐야 하는데 나와 환경 간의 관계를 보는 거예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주의’ 적 패러다임이 여기에 해당되죠. 행동주의는 개인과 환경을 대비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 환경을 못 이깁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문제는 개인에게 돌아오게 되고…. 미국심리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세로토닌’ 등등의 문제, 혹은 개인의 어린시절이 불우해서 그렇다던가 하는 식의 개인적 문제로 돌려버려요. 그래서 결국 결론은 ‘마음 수련을 해라’ (웃음) 이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게 미국의 주류심리학입니다.

자기 마음이 망가지고 힘든데 이 괴로움이 세상과 관련 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집에만 있으려고해요. 세상에 관심이 없죠. 에너지가 없거든요. 그래서 자기에게만 집중해요. 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지금의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관심가질 만한 에너지가 없다 보니 관심이 모조리 자기에게 묶여있어요. 정작 문제의 원인은 세계에 있는데 그걸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사람들이 술, 쾌락, 종교에 빠지고 마음치유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 아닌가요. 결국 이들은 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능력을 상실한 거거든요.”


▶건강하지 않은 의심의 예를 들면 이런 것 아닐까요. 어떤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진보정당이 비판을 가하면 오히려 그런 진보정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촛불집회의 배후에는 좌익빨갱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식의 여론이 돌고, 그것을 당연히 믿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일종의 피해의식이에요. 모두 나를 공격하려고 한다고 믿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시작하는 거고. 그런데 한편으로 진보진영이 이런 비판을 받는 데에는 진보 스스로가 자기 내부비판에 인색한 문제도 있죠. 이 인색함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 하면 스스로가 너무 위축돼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남을 치료하기 전에 자기부터 치료해야 하는데, 진보라 불리는 집단은 그게 잘 안돼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분석’ 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알콜 중독자는 술을 많이 먹는 사람한테 “너 그 따위로 살 거야?” 라고 욕 못해요. 결국 나를 욕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통 자기분석부터 시작해서 자기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 치료가 되는 법인데, 그것처럼 진보도 스스로를 비판하고 준엄하게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타인에 대한 강한 비판력이 생기고 스스로에게도 떳떳해 지는 겁니다. 자기성찰이 안 된 상태에서 남을 비판하려니 떳떳하지 못한거죠. 그럼 방어적으로 되고, 뭐든지 의심하게 되고… 피해망상이란 게 거기서 와요.”

남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치료해야

구조를 파악하고 현상을 비판할 수 있는 의심능력은 상실된 반면, 바로 옆에 존재하는 타인에 대한 의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현실이다. 데이비드 캘러헌의《치팅컬쳐》에 수록된 종합사회조사의 결과는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증하고 있다.


1970년대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사기 당할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을 갖지 않았지만 2000년대에는 무려 60%의 미국인들이 ‘사람을 상대로 하면서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 답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의심의 상실로 인해 개인은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 거짓말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이 사회에 만연해진 것이다.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 자기소개서를 보면, 남과 폭력적으로 경쟁했던 경험이 도전, 열정 등의 키워드로 치환되고 있습니다.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인생과 경험과 사실들을 거짓말로 포장하고, 그 포장을 잘 하는 법이 또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니고, 그 포장을 잘 하는 사람들끼리 모아서 면접 스터디 그룹 같은 것을 꾸리는데. 이런 식의 정신적 폭력이 가해져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데요.


“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면 장땡이지’라는 게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고, 그 이데올로기를 사회가 조장하고 있죠. 실제로 찬양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전과 14범이 대통령이 돼도 부러워하잖아요. ‘난 저렇게 안 살아’ 가 아니라 ‘저렇게 살아도 대통령이 되고, 나중에 퇴임하면 한 몫 잡겠지’ 라고 생각하죠. 게다가 ‘저런 놈들은 나중에 벌도 안 받더라’ 라는 패배감까지 공존하고 있어요. 이런 현실들 때문에 대중들 속에서는 편법을 쓰든, 나쁜 짓을 하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강박과 신념이 일반화돼있고, 사회에서도 그런 풍조에 아무도 안티를 안 걸고, 더 나아가 모든 매체에서 그걸 찬양하고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려면 그런 사람들이 소수여야 해요. 친구들은 다 안 그런데 자기하고 몇 명만 그러면 죄책감이 생겨요. 근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그게 대세가 되어버리면 죄책감이 상당부분 상쇄되고 나중에는 자기합리화가 돼요. ‘나만그런게아니다’ , ‘애들 다 그렇다, 세상이 다 그렇다’그러니까 너도나도 뛰어들죠. 불쌍한 사람한테 혼자 돌을 던지면 돌을 던지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지만, 열 명이 함께 한꺼번에 돌을 던지면 돌을 맞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돼요. 군중심리가 작동하는 거죠.


체념과 패배주의를 내면화하도록 강요한 우리의 현대사


▶한편으론 세상에 반하는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하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도시의 모든 편리와 개인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농촌으로 내려가 안빈낙도하며 사는 이들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있는 반면에 ‘나는 저렇게는 못살 것이다’ 하는 마음도 양립하는데요.


“부러움이죠. 그렇게 살 수 없으니까. 일종의 패배주의에 속하는 건데, 한국 근현대사가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퍼트렸어요. ‘도덕 옳은 것 알겠는데, 결국 도덕 지켜봤자 거지 된다. 나쁜 짓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나쁜 짓하며 산 사람들 너무 잘 살더라’ 라고. 거기서 나온 체념과 패배주의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기꾼을 숭배하게 만드는거죠.”

70년대에는 전태일이 있었다. 80년대에는 박종철이 있었으며 90년대에는 강경대가 있었다. 혁명적 사건의 발화가 된 죽음들이다. 정치권력이 개입된 부당한 죽음에 자극받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조금씩 이 사회의 인권, 노동환경,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그 이후에도 수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등록금, 정리해고, 재개발 등에 맞선 이들이 분신하고 투신하며 그렇게 목숨을 내던졌다. 그러나 그 죽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또래들의 죽음에 왜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가.


▶의심할 능력을 상실한 세대. 그렇다면 분노할 힘마저 남아있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분노의 동기가 생기려면 앞서 말했듯 ‘우리’ 라는 의식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같이 살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 말이에요. ‘광주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었어. 저들은 왜 저렇게 떼죽음을 당해야 하냐’ 는 생각이 있어야 분노가 생기거든요. 지금은 그런 분노가 생기기엔 사람들이 너무 조각나 있죠. ‘우리’ 라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접하는 사건들은 다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릴 뿐이죠. 구조와 집단이 다 깨지면서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정보를 못 보는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머릿속에 들어오죠. 그렇지만 그런 정보에는 마음이 가지 않아요. 잊어버려요. 파편화 돼 있다는 것이 바로 그런 거죠. 불안과 공포에 쫓겨서 다른 사람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내가 물에 빠져 가라앉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그 심리에 압도돼있거든요.


또 하나는 죄의식 때문에 회피하는 거예요. 불의를 봤는데 동참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요. 동참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도 감당하고 싶지 않아요. 이때 제일 좋은 방법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거죠. 나의 죄의식을 자극하지 말라는 거예요. 마음이 아프니까… 그래도 다들 양심은 있거든요.


길을 가다가 이 추운 날 누가 길에 쓰러져있는 것을 봤다고 칩시다. 당연히 가슴이 아프죠. 대부분 연민과 동정을 느껴요. 그렇지만 다들 고개를 돌리죠. 왜? 마음이 힘들거든요. 보고 있으면 뭐라도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여유도 없고. 그렇게 해줘서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도 없고. 그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동기가 생기는데 지금 다들 그런 믿음이 없어요. 내가 일으켜주면 그 사람의 인생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없어요.”

작은 승리라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분노란 인간의 욕구가 좌절됐을 때 표출되는 감정으로,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오늘날 분노의 표현이란 최근 보도된 뉴스처럼 고등학생들이 개들을 집단 학살한다든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거든요.


“우리는 건강한 욕구가 좌절됐을 때 분노합니다.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때 분노하고, 내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은데 타인이 좌지우지할 때 분노하는 그런 게 정당한 분노죠. 그러나 이기적인 분노는 건강하지 못해요. 장기적으로 봤을 땐 자기파괴적이고. 예를 들어 현 정권이 분노하는 거 있잖아요.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 4대강 뚫겠다는데 좀 내버려둬라!’ 그건 병적인 욕구에 의해 나오는 분노니까. 그런 분노는 계속 표출할수록 병들기 십상이죠.


건강한 분노는 파괴적이지도 않고 병적이지도 않고 격렬하지도 않아요. 병적인 분노가 ‘지랄 맞아’ 문제지(웃음). 대학살을 낳는다던가, 광기를 띤다거나.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보수세력의 분노, 광신도들의 분노가 그렇죠. 정말 건강한 분노는 미친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분노는 당연히 어딘가로 표출돼야 해요. 마음속에 있으면 자기를 죽이려고 들기 때문에 결국 자기 공격을 하거든요. 화는 잔뜩 났는데 어디 쏟을 데가 없으면 결국 자기에게 돌아와요. 자기 학대가 돼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할 경우 자살에도 이르게 되죠. 근데 그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게 파시스트예요. 대중의 병적인 분노를 적절히 이용하는 거죠.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잘못 되면 그런 게 나올 수 있어요. 이렇게 분노가 쌓여서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왔는데 마땅히 분출할 곳이 없다면 일촉즉발의 상황에 다다를 수도 있죠. 예를들어 현 정권이 ‘어떤 집단 때문에 너희가 이렇게 불행한 거다’ 라고 잘 선전하고 그것이 성공만 한다면, 위험합니다.”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이기’ . 모두가 이기화 돼있지만 결국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도, 다른 이기주의자들을 좋아할 수도 없다. 사람의 본성상 이기주의는 멀리하게 돼있다. 자기 혐오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자기가 비루하고 싫지만 사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합리화한다. 이 세상엔 이리떼들이 득실거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변혁, 진보라는 관념적인 가치들이 와 닿을 수 있을까?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더욱 척박해질 것이라고 심리학자 김태형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신시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지금 세대가 의심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결국 승리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요. 어떤 경험이나 기억이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체험의 유무는 몹시 중요하죠. 심리학자들은 이런 얘기를 해요. 과거에 일등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유년기에 일등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과 일등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의 자신감은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 패배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겨보는 경험을 하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진 않죠. 그래서 심리치료를 할 때에도 처음에는 쉬운 과제를 줘서 이기게 해 주면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요. 그러나 만날 지던 사람 고치는 일이 쉽지는 않죠(웃음).


지금 이 세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를 복원하는 거예요.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아닌 우리라는 틀로 세상을 볼 때 짱돌을 들 수밖에 없는 문제가 보일 거예요. 지금은 개인들이 모두 파편화돼있기 때문에 호소력도 없고, 확신도 없고, 가능성도 안 느껴지고, 짱돌 들었다가는 나만 인생 ‘조진다’ 는 생각이 만연한데 누가 나서겠어요. 힘들죠.


공동체가 복원된다는 것은 지금 만연해 있는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해요. 개인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아무리 짱돌을 들라고 말해도 소용없거든요. 대신 우리가 지향하고 만들어야 하는 공동체는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에너지를 회복시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그 에너지가 회복된 이들이 모두 짱돌을 들고 나설 때가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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